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자성의 난 (문단 편집) === 이후 === 이자성의 난은 이후 중국의 정치가들에게 지속적인 교훈이 되었다. [[장제스]]는 대후금 전선에 주력군을 투입했다가 내부의 이자성군에게 망한 [[명나라]]의 [[흑역사]]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양외필선안내(攘外必先安内:외적 퇴치보다 내부 안정이 우선)라는 원칙을 세우고 [[일본]] 및 [[소련]]의 침략에 소극적으로 대했다. 즉, 일본([[열하사변]] 및 [[만주사변]])이나 소련([[봉소전쟁]])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대폭 양보해 휴전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대신 내부 반란군인 공산군에 대해서는 대규모 [[초공작전]]을 벌여 토벌하는데 더 힘을 쏟았다. 반대로 [[마오쩌둥]]은 북경 입성 후 도적떼로 변해서 민심을 잃어버린 이자성군을 [[반면교사]]로 삼아 당과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경계하였다. 또한 [[신민주주의]]론을 내세워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지식인 및 자본가들도 계급투쟁 대상에서 제외하여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국민당군 장교나 고관들에게 이전과 비슷한 지위와 대우를 약속함으로서 투항을 유도하여 제2의 오삼계가 나오는 것을 방지했다. 그 밖에도 이자성을 나름 존경하여 자신의 재산으로 인세를 선불하여 소설가 야오쉐인(姚雪垠)[* (1910-1999) 야오쉐인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, 좌익 작가의 대표주자격인 후펑(1902-1985)로부터 우경분자,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. 하지만 마오쩌둥이 야오쉐인의 글을 선호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집필에 쓰라며 금일봉을 계속 보낼 정도였다. 야오쉐인을 비난하던 후펑은 1955년 도리어 반동분자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았다. 20여년간 복역 후 마오 사망 이후 풀려나 복권된다. 야오쉐인이 집필한 소설 이자성 전편을 읽는 게 평소 소원이었으나, 1963년 제1부 1권이 나온 이후, 20년이 지나고, 마오의 사망 6년 이후인 1982년에야 소설 이자성은 완간되었다. 이 소설은 사실 중국어로 8권(1부 상하, 2,3부 각각 상중하 2+3+3) 분량(대체로 중국어 소설 1권은 한글로 2권 분량이 나온다)의 대하소설이다.]으로 하여금 대하소설 <이자성>을 집필하도록 하였고, [[문화대혁명]]이 한창인 와중에서도 군인들을 보내 야오쉐인을 [[홍위병]]들의 행패로부터 지켜주었다.[* [[문화대혁명]] 와중에 [[홍위병]]들한테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죽거나 다친 소설가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, 마오쩌둥이 야오쉐인과 그의 소설 이자성을 얼마나 아껴주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.] 소설 <이자성>은 [[중국]]에서 한동안 매우 인기가 높은 베스트셀러였고 외국에도 번역되었는데, 국내에도 출간되기는 했으나 매우 오래전이라 현재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고, [[헌책방]]이나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같은 곳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